판단의 스칼라화
나를 포함하여 요새 사람들이 판단의 근거를 너무 단순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세상은 벡터인데 다들 스칼라로 처리하고 있는 느낌.
처음엔 정치 판단이나 상품 구매 정도만 떠올렸는데, 생각해보니 사회 전반이 그렇다. 사람에 대한 평가마저도 팔로워 수, 연봉, 학벌 같은 하나의 숫자로 접혀 들어간다. 다차원 존재를 스칼라로 압축하는 것.
왜 이렇게 됐을까? 원인은 양쪽 다인 것 같다.
- 개인 쪽: 결정해야 할 게 너무 많아진 상황.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심적 여유가 없다. 물품 하나 사는데도 고려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 판단 기준을 간단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 공급자 쪽: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기업, 정치인 등)에서는 스칼라적 요소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게 팔리니까.
이 둘이 서로 강화한다. 개인이 단순화를 원하니까 팔리는 쪽도 단순화하고, 그게 다시 개인의 판단 습관을 굳힌다.
그럼 스칼라가 나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심플 스칼라로 판단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나 당장 휴지 사야 하는데 벡터로 다 따지다가 안 살 수는 없으니까. 개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
근데 당연히 벡터로 고려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좋은 것 아닌가? 그거마저 환상일까.
- 역사적으로 벡터 사회가 있긴 했나? 작은 마을 공동체에선 이웃을 다면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스칼라화는 인간 본성 문제라기보다 사회 규모(scale)의 함수일지도. 모르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압축 지표가 필요해진다.
- 모든 판단을 벡터로 하는 건 확실히 환상이다. 근데 중요한 판단만이라도 벡터로 지킬 여유를 남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휴지는 스칼라로, 배우자. 직업, 투표는 벡터로. 문제는 그 “중요/사소”의 구분마저 스칼라화되고 있다는 것.
- AI가 오히려 벡터를 복원할 수도 있다. 인지부하를 대신 져주니까. 근데 그 AI가 다시 스칼라 점수를 뱉으면 도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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